전에 세이님이 주신 '주간, 야간 저지먼트'라는 리퀘를 쓴 적이 있는데요...
그것의 확장판? 2012년판?(웃음)
아예 세계관을 새로 파서 다른 작품같기도 하지만 일단은 초전입니다.
이어질 지는 모르지만 단면에 두긴 아까워서 ㅎㅎ
그럼 이 안에서 삽질하는 쿠로코를 잘 부탁합니당:D
“수고하셨어요.”
우이하루의 영혼 없는 인사에 못마땅한 마음을 눈길로 담아 한 번 찔러주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학원 도시에 사람이 한 명 들어올 때마다 담당자가 되어 일일이 필수 조항들을 읽어주고,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싸인을 받는데 이게 그렇게도 귀찮다. 모두가 기피하는 만큼 학원 도시의 최첨단 시스템을 풀가동, 무작위 추천으로 담당자를 결정한다.
최첨단이니 10년 앞선 기술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 인간에 따라 그 쓸모와 의미가 결정된다는 좋은 예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엔 어때요? 잭팟이 터졌나요?”
“아쉽게도 무능력자에요.”
안도의 한숨, 아쉬움의 탄성 등 다양한 반응이 사무실을 매웠다. 굳이 따지자면 아쉬움 반, 안도 반? 저지먼트의 담당으로 들어온 학생이 고능력자 일수록 그 저지먼트가 받는 혜택도 더 커진다. 알려진 바로는 고능력자는 천문학적인 확률로 발견된다고 하니 고능력자가 발견되지 않을수록 다음 담당자의 확률이 미세하지만 더 올라가게 된다, 라고 믿고들 있다. 한 편으로는 그 고능력자를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저지먼트들의 아쉬움이다. 레벨 4로 통칭되는 고능력자의 수도 적은 편이지만 특히 레벨 5, 초고능력자를 실물로 본 사람은 이 넓은 사무실 안에서도 손에 꼽을 것이다.
“이제부터 서류 작성할 거니까 말 걸지 말아요.”
말하며 슬쩍 보니 우이하루는 흥미가 떨어진 지 오래인지 안경을 쓴 채로 모니터에 몰두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우이하루가 쓰고 있는 그 안경으로 보지 않는다면 단순히 검은색으로만 보이기 때문.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저지먼트 개개인의 책임감을 강화시킨다며 특수 번호가 입력된 개별 안경 부여받는데, 화면이 안 보이니 마지못해 쓰긴 쓰지만 쿠로코에겐 영 귀찮기만 했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대충 쓸어 올리고, 타자를 두드렸다. 사텐 루이코. 무능력자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얼굴에 스친 절망, 괴로움 등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흔한 일이었다. 바깥 세상에서 조금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는 인간들이 혹시? 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학원 도시로 들어와 무능력자라는 현실에 부딪치고 진짜 천재들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괴로워하다가 도로 나가거나, 때론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하고 만다. 이 아이도 그렇게 되진 않아야할 텐데…….
“아! 글쎄! 내 말을 좀 들어보라고!”
“이러시면 안 돼요!!”
“정식 절차를 밟으시고…….”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소음의 근원이 문 앞에 있다고 생각될 쯤엔 거의 대부분이 하던 일을 멈추고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뻥, 문을 발로 찬 누군가가 거머리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은 저지먼트 3명을 이끌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안으로 들어왔다.
“난 그냥 책임자를 만나고 싶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절차를 밟으셔야 해요. 멋대로 들어오시면 정말 곤란해요.”
“그거 다 하다간 내일 밤 다 새도 못 만나겠네!”
30여명의 저지먼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난입자의 행동은 점점 더 과격해지기만 할 뿐, 좀처럼 조용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리는 저지먼트들 ( 얼굴을 보니 순찰 담당이었다가 쉬러 들어온 사람들 같았다. ) 의 간절한 도와달라는 눈빛에도 모두 재밌어하며 지켜볼 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별 일이네요. 시라이씨.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저렇게 무법자를 싫어하는 당신답지 않게.”
어깨를 조금 넘는 갈색머리. 왼쪽 구석에 달린 머리핀은 고집 있어 보이는 인상을 누그러트리고 있었다. 삐죽 솟은 눈썹과 꾹 다문 입술. 귀엽다는 게 첫 인상이지만 단순히 귀엽다고 말하기엔 찜찜한 인상. 그런데도 ‘아, 글쎄!’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할 시점에는 풋 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응?”
“아니, 아니요.”
피식 새어나오는 미소를 막을 길이 없었다. 뭔가 잘 못 먹었나, 어디 아픈가, 열이라도 있나, 진부한 확인행동들을 취하는 우이하루를 보자 또 차분해져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이하루가 말하길 지루해하고, 어딘가 포기한 듯한 무표정이라던 그 평소의 얼굴.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휴, 하는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는 우이하루였다.
“있지, 시라이씨.”
“네?”
“슬슬 나가봐야하는 거 아니야?”
오른쪽에 앉은 저지먼트 동료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다 그 외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죠?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릴 쯤에야 상황을 파악했다. 진짜 담당자인 코노리 선배가 오늘은 쉬는 날이니 이 지부의 유일한 고능력자인 쿠로코가 본의 아니게 임시 담당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런 룰은 없으니, 고능력자라는 빌미로 귀찮은 일을 떠넘기는 것에 가까웠다.
“흠…….”
“고민할 정도로 저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네요, 시라이씨는.”
우이하루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뭐래, 하는 표정을 지은 쿠로코였지만 우이하루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의 이름은 ‘미사카 미코토’”
우이하루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다음 문장에 그런 의문 따윈 싹 지워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넘어가 큰 소리가 났다. 전원이 쿠로코에게 집중했다. ‘미사카 미코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가주시죠.”
“뭐?”
“당신같이 시끄럽고 주제도 모르는 사람 같은 건 딱 질색이니까 썩 나가주시지 않겠습니까?”
미사카 미코토의 표정에 황당함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넌 뭐냐는 눈치.
“제가 댁이 찾던 사람이 맞는데요. 이런 식으로는 하느님, 부처님이 와도 안 만나요. 아시겠나요?”
“뭐…….”
“절 찾는다는 건 당신에게 용건이 있다는 것. 하지만 전 당신에게 용건이 절.대.로. 없습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죠. 그러니 아쉬우시다면 정식으로 서류절차 밟고 빠른 시일 내에 뵙도록 하죠.”
썩 꺼져라, 의 매우 바르고 정중한 표현을 곱게 말한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저 고집으로 볼 때 쉽게 나가줄 것 같진 않았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한 순간에 미사카 미코토의 옆에 텔레포트를 해 섰다. 당황하는 그녀의 어깨에 손가락만 살짝 얹어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닿은 것만으로도 찝찝해서 손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유일한 고능력자, 희소한 순간이동 능력자라는 호기심 어린 눈길이 싫어서 가능한 능력은 쓰지 않았다. 간만에 보인 쇼와 같은 광경에 모두 질투 반 동경 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딱딱한 표정인 채로 화장실로 나섰다. 미지근한 물을 틀어 한참을 손을 씻어야했다. 비누를 집어 들었다.
일렁이는 수면에는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우이하루의 표정이 찰랑거렸다.
[저 사람의 이름은 ‘미사카 미코토’. 야간 저지먼트예요.]
거품이 손에서 씻겨 내려가도 이 찝찝한 기분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사텐씨, 라고 부르겠습니다. 사텐씨, 지금부터 보여드릴 서류에 싸인을 해주셔야합니다. 우선 절대 원칙입니다. 12시가 넘어서는 절대로 밖에 계시면 안 됩니다. 만약 12시가 넘어서도 밖에 계실 경우 무슨 일이 생겨도 학원도시에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서류입니다. 사인 부탁드려요.]
[왜죠?]
[저와 같이 새로 들어오시는 분들을 안내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학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상부에 전하는 사람들을 저지먼트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학생인 만큼 24시간을 계속해서 일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12시부터 6시까지는 ‘야간 저지먼트’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집단에 치안권을 양보합니다.]
[야간 저지먼트?]
[네. 같은 저지먼트라는 이름이 붙지만 하는 내용도, 그 성질도 엄연히 달라서 그들이 누구인지는 저희도 몰라요. 다만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그들에겐 ‘살인허가권’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거죠.]
[그럼…….]
[아시겠어요? 혹시 12시가 넘어서 사텐씨가 밖에 계실 때, 적으로 착각한 야간 저지먼트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셔도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 싸인은 ]
-
차마 개인적인 생각을 늘어놓을 수는 없어서 최대한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기까지 할 정도였다.
“미쳤네요, 진짜.”
아무리 몰랐다곤 해도 그런 사람을 보면서 귀엽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우이하루의 그 표정도 그런 쿠로코를 측은하게 여긴 것이 틀림없다.
친해져보면 좋겠다고, 재밌을 것 같다고까지 생각했건만…….
이젠 만들어진지 얼마 안 됐지만 지워야하는 끔찍한 과거의 기억이 되어버렸다. 물을 끄자, 손끝을 타고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만이 귓가에 닿았다.
살인이 허가, 아니 무죄인 집단.
그렇다면 그 죄라는 것은 누가 부여하고, 누가 거두어들인단 말인가.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데, 그게 죄가 없다니. 애당초 죄란 무엇인가.
물론 쿠로코가 저지먼트 일을 사명감에 불타올라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물 흐르듯 그렇게 해버린 일이었다. 때론 재미도 있고, 때론 보람도 느낀다. 동기가 불분명한 저지먼트라도 이것만은 알 수 있다.
야간 저지먼트는 잘못되었다. 존재자체가 말도 안 된다. 같은 저지먼트라는 단어로 묶인다는 것도 끔찍할 정도다.
[아, 글쎄! 그냥 좀 만나본다니까!]
미사카 미코토. 어차피 야간 저지먼트와는 만나는 게 드물다. 평생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왜 야간이 잠도 안자고 이 시간에 찾아왔는지 이제야 좀 궁금해졌지만 쿠로코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만나기만 할테니까, 응?]
잊자. 잊자. 잊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이제 그 이름조차도 들을 일이 없겠지.




덧글
그나저나 처음 시작하기도 전에 삽질하는 쿠로코를 잘부탁드린다니ㅋㅋ 잘읽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에 뿜었네요. 삽질하는 쿠로코!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겠습니다ㅠ.ㅠㅋㅋㅋ
근데 최대한 아껴 읽었는데도...ㅠㅠ...야간/주간의 대립구도라니 컬쳐쇼크...!다음편 넘 기대되네요ㅠㅠ
기껏 미코토와 같이 저지먼트일을 할 수있을 것도 같은 상황인데...설정부터가 이미 쿠로코 삽질루트:0ㅋ..
설레는 맘으로 다음 편을 기대하겠습니다!:D
쿠로코가 삽질한다는 생각에 기쁨과 슬픔이 각각 반반씩ㅋㅋㅋ 생겼습니닼ㅋㅋㅋㅋㅋㅋ!!!!!!!!!!!!!!!!!!!!!!
으으....미코토가 야간이고 쿠로코가 주간...그렇군요...과연 이 둘은 지금부터 어떻게 삽질을 해나갈 것인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기대가 됩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도님 파이팅!!!!!!!!!!!!!!!!!!!
ㅋㅋㅋㅋㅋ아무튼ㅋㅋㅋㅋㅋㅋ깔끔하게 밖으로 텔레포트해버리는 쿠로코 좋네요:D 신나게 구르는 쿠로코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두근두근!!!!!!합니다!! 미코토에게 좀 더 차가워져두 돼!!!라기보다 그게 보고 싶다 쿠로코야!!!!!!ㅋㅋㅋㅋㅋ라는 생각을 하면 저는 나쁜 싸람일까요..?ㅋㅋㅋ
근데 쿠로코가 삽질루트라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뭔가 감정적으로 구르는 미코토도 보고싶은데 말이죠(소근소근)
미코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쿠로코의 능력 하나에.....그르케 쫓겨나고 ㅋㅋㅋㅋ
귀엽네요 뭔가..
그렇지만.. 왠지 내용이 사뭇 무거울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구르는 쿠로코...아, 저런 아가씨같은 싸가지가 참으로 좋아요!
미코토는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고.
이 글은 정말 궁금증 투성입니다!
확정적인건 쿠로코가 미코토를 좋아하게되고 두 사람 다 데구르르~ 해서 모두를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겠죠. ㅎㅎㅎ